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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마치고

by 젬마네 2023.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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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이 다가와 절임배추 40킬로를 구입해서 김장을 마쳤다.

성장기를 보낸 시골 고향에선 예전 같으면 겨울 식량이라고 앞마당 가득 배추를 절이고 친척들이 모여 절여진 배추를 헹구고 양념을 버무리며 마치 잔칫날 같은 분위기가 해마다 이어지곤 했었다

세상의 변화속에 이젠 추억 속에나 그려보는 모습이 되었다.

도시생활에서는 배추를 절일만한 공간도 부족하고 다들 바쁜 일상 속에 생활하다 보니 절임배추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지역이 생겨나고 그것을 구입해서 간편하게 양념을 버무려 넣어 김장을 하는 것이 지금은 보편화되었다..

그조차도 번거롭다고 아예 만들어진 김치를 구입해서 먹는 인구도 많아졌으니 김치공장도 그만큼 많아졌다.

 

김장을 하다 보면 무청이나 배추 우거지들이 많이 나온다

무청을 다듬어 시래기를 만들면서 예전 어머니께서 무청시래기가 너무 맛이 있다면서 자주 콩가루에 묻혀 국을 끓여 주시던 생각이 났다그 당시 어린 나는 풀내음만 나는 무청시래기가 뭐가 맛있다고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줄곳 하곤 했다. 어린 나에게 무청 시래기는 아무 맛도 없는 풀내음만 나는 음식이었다.

 

이북이 고향인 어머니는 평양에서 여학교까지 마치시고 아버지를 만나 경상도 안동이라는 곳으로 시집을 오셨다.

생활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시집와서 처음엔 맘고생이 많았다고 줄곳 우리 자녀들에게 말하곤 하셔서 어린 나는 그럼 엄마 안동 살지 말고 고향으로 가지 그랬어?” 했더니 어머니는 “38선이 가로막혀서 못 갔지~” 하시며 이북에 남겨진 외갓집 식구들을 그리워하곤 하셨다.

안동포로 유명했던 지역 안동에서 나의 고향 모시밭 동네는 우리가 여학교 다닐 때 까지도 거의 집집마다 베 짜는 베틀이 있었다. 평양에서 신교육을 받으며 자란 어머니에게 베짜는 것은 생전 보도 못한 일인데 막상 시집이라고 오니 베도 못 짜는 것이 사람이냐는 동서들의 시기 어린 시집살이로 맘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셨다.

그런 어머니는 손맛이 좋으셔서 어떤 음식이든 어머니 손만 가면 맛있는 음식이 되어 나오곤 하였다. 

장맛 좋은 집으로 소문이 나서 언제나 우리 몸집보다 큰 장항아리에서 옹기그릇에 된장을 퍼서 큰집, 작은집으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남편도 결혼 후 식사 때마다 하는 말이 된장 이렇게 맛있는 것은 먹어본 적이 없다는 말을 늘 하곤 하기에 어느 날 나는 부모님 살아생전에 장 담그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알려달라고 했더니 생각보다 쉬웠다.

오래 묵혀서 간수 뺀 소금과 물맛 좋은 자연수로 1:4의 비율만 맞추면 장이 맛있다고 하시며 직접 담그는 법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소금은 미리사서 4-5년 쟁여두고 간수를 빼서 사용해야 한다고 하셔서 그때부터 지금껏 우리 집엔 항상 소금이 몇 포대씩 쟁여져 있다.

공직에 몸담고 일하며 30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된장, 고추장, 김치등 모든 음식을 사서 먹은 적이 없이 직접 담가서 먹고 있다.

나의 외모만 보는 사람들은 직장 동료들 조차 밥도 안 해 먹고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가 한 번씩 집에 놀러 와서 보고는 깜짝 놀라곤 하였다.

나는 외모는 완전한 도시여자지만 나의 품성은 신토불이 그대로인 것이다.

친구들에게 김치맛집이라는 말도 많이 듣고 김치장사 같이 하자는 사람도 몇 분 계셨다.

음식맛의 비결이 뭐냐고 묻는 분들이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 가지 "오~래 묵혀서 간수 잘빠진 소금만 사용하면 어떤 음식도 맛이 나게 되어 있어 " 이건 내가 음식을 만들며 알게 된 진리다.

아마도 공직에 몸담지 않았으면 음식장사 쪽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은 해보았고 음식장사하면 돈 벌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직장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 없이 내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김장을 마치고 무청시래기를 삶아 예전에 어머니가 해주시던 무청시래기 콩가루 무침 국을 끓였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이 시래기가 뭐가 맛있다고 하는 거지? 했던 그 시래깃국을 그때를 생각하며 삶은 시래기를 쫑쫑 썰어서 콩가루에 다박다박 묻힌다음 다시마 멸치넣고 끓인 육수에 넣고 한소끔 끓여내니 예전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시래기국 모양은 그대로 나왔다.

고소하고 맛이 있다. 어머니가 가던 길을 나도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웃음이 나왔다.

그 맛없다고 여겼던 시래기가 맛있는 나이가 되고보니 어머니께서 하시던 시래기 맛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내가 예전의 어머니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이제는 사라져 가는 김장철의 분주하고 즐겁던 시간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추억으로 묻혀가는 아쉬움에 잠시 추억을 돌이키며 기록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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