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개인용 컴퓨터 분야의 선구자이며 미국 비즈니스계의 거물, 산업 디자이너 및 Apple Inc의 설립자 스티브 잡스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1955년 2월 24일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2011년 10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를 변화시킨 창의적인 천재 스티브잡스에 대해 알아보자
1. 스티브잡스 애플 공동창업 하다
1976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공동 창업한다. 잡스 가족 차고에서 스티브는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했다. 그는 GUI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1980년대 초 애플 컴퓨터사가 설계한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였다. 1986년 경영분쟁에 의해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다. 1996년 애플이 NeXT를 인수하게 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고 1997년에는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금 애플을 혁신해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이끌었다.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여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다.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 PC 시대(Post-PC era)를 열었다.
2. 스티브잡스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 소유
스티브 잡스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의 소유주이며 CEO였다. 영화 《인크레더블》과 《토이 스토리》 등을 제작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지분을 월트 디즈니 회사는 74억 달러어치의 자사 주식으로 이 회사를 구입하였다. 2006년 6월 이 거래가 완료되어 잡스는 이 거래를 통해 디즈니 지분의 7%를 소유한, 최대의 개인 주주이자 디즈니 이사회의 이사가 되었다. 한편 그는 2003년 무렵부터 췌장암으로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그의 악화된 건강상태로 인하여 2011년 8월 24일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최고경영책임자(CEO)를 사임하고 최고운영책임자인 팀 쿡이 새로운 CEO를 맡는다고 밝혔다. 잡스는 CEO직에서 물러나지만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시키기로 했으나, 건강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사임 2개월도 지나지 않은 2011년 10월 5일 향년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스티브잡스의 성장기
스티브 잡스의 성장기를 보면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자주 빼먹는 불량 청소년이자 사고뭉치였다. 잡스의 4학년 담임이었던 하이힐 선생님이 돈으로 구슬리는 것으로 겨우 학교생활을 하던 그는 히스키트라는 아마추어 전자공학 키트를 얻는 순간 인생의 전환점에 도착하게 된다. 그는 이 키트 덕분에 어려서부터 전자제품의 작동원리를 익히게 되었다. 아버지 폴 잡스는 세일즈맨과 동시에 중고차를 사들인 후 수리하여 재판매하는 일을 하였는데 스티브 잡스에게 기계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물려주려고 하였다. 예를 들면 해체하여 다시 조립할 수 있는 물건을 주는 식이었다. 어린 시절 잡스의 집은 마운틴뷰에 있었는데 폴 잡스는 차고 안에 있던 작업대의 반을 스티브에게 주며 보이지 않는 뒷부분도 앞면과 같이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을 전달해 주었다. 이는 후에 잡스의 제품 철학이 된다.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 엄마인 클라라 잡스는 잡스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는 잡스가 학교 공부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4학년 말에 잡스는 힐 선생의 권유 아래 수학 능력 평가를 보았고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수학 능력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자 잡스 부부는 잡스를 한 학년을 월반시키기로 결정하였다.
4. 스티브잡스의 청년기
잡스는 9학년(현재의 중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홈스테드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스티브잡스는 청년기시절 고등학교에서 그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그 주가 되는 것이 반문화 운동이었다. 잡스는 반문화 운동에 빠져 있던 12학년의 여러 학생들과 많은 교류를 하며 전자공학, 수학, 과학 등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마약의 한 종류인 LSD와 반문화 운동 전반에 대해서도 흥미를 보였다. 잡스는 후에 실리콘밸리의 전설이 된 존 매콜럼의 전자공학 수업을 듣기도 하였는데 군대식 규율을 중요시하는 맥콜럼에게 권위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매콜럼에게 미움을 사던 잡스와 달리 후에 잡스와 함께 애플사를 세우게 되는 스티브 워즈니악은 맥콜럼의 총애를 받던 학생이었다. 1971년 워즈니악과 잡스는 애플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한 블루 박스를 제작하고 판매하였다. 그는 과학 분야가 아닌 다른 여러 분야의 책들도 관심을 가지고 많이 읽기 시작했고 음악도 많이 들었다. 잡스는 특히 <리어 왕>과 <모비 딕> 그리고 딜런 토머스의 시를 좋아했다. 잡스는 1972년 리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교 이후 1974년 2월, 잡스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앨터스의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고, 구인 광고에 “즐기면서 돈 버는 곳”이라고 적혀 있었던 비디오게임 제조사 아타리의 로비에 들어가 채용해 줄 때까지 버티고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아타리의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엔지니어였던 앨 알콘에 의해 고용된다. 잡스는 아타리에서 몇몇 게임이 개선되도록 도왔으며 복잡한 설명서를 읽을 필요가 없는 직관적이고 단순한 아타리 게임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이후에 자신의 집 차고에서 애플을 설립하고 사옥에 이르기까지 발전시켰으나 이후 매킨토시 프로젝트 등이 실패하면서 결국 애플에서 나오게 된다. 이후 애플은 지독한 적자를 겪다가 결국 다시 스티브 잡스에게 CEO로 맡기면서 애플은 승승장구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서 온 세계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살아오던 기존의 생활패턴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 것이다
5. 스티브잡스의 인생 후반기
잡스는 1973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대학교 철학과를 한 학기만 다니고 중퇴한 후 오리건주 올인원팜(All in one farm)이라는 사과 농장에서 히피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그곳에 기거하던 일본 불교 승려인 오토가와 고분 치노(일본어: 乙川弘文)를 만나 불교에 입문했다. 스티브잡스의 인생후반기에는 그의 정신적인 멘토였던 스님 고분치노에게 많이 의지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잡스의 결혼식 주례도 오토가와 고분이 했다. 결혼 이후 회사가 잘 안 되자 잡스는 출가하여 승려가 되려고 고민했었다. 하지만 스님이 반대했다고 한다. 잡스는 이후에도 오토가와 고분이 2002년 사망할 때까지 항상 그를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애플이란 회사명, 애플 제품의 매우 단순한 디자인, 사과농장, 불교는 매우 큰 관계가 있다. 2011년 3월, 아이패드 2를 발표하기 위해서 잡스가 모습을 나타냈다. 잡스는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 경영에 문제가 없음을 과시했으나 이후 다시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어 같은 해 8월 애플 CEO직을 사임하고 췌장암으로 2011년 10월 5일, 향년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잡스가 디자인한 마지막 아이폰은 아이폰 5였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은 다음의 애플 공식성명에 의해 알려졌다.
"애플은 명확한 비전과 창의성을 지닌 천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습니다. 이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으며, 그의 정신은 애플의 근간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잡스의 장례식은 사망 이틀 후인 10월 7일 가족들과 지인 일부가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생전 잡스가 믿던 불교식으로 진행되었고 발인 후 애플 사옥을 방문한 뒤 화장되어 안장되었다. 그의 기술, 디자인, 대중문화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티브잡스가 남긴 유산은 계속해서 기술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전 세계 수많은 기업가와 혁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6. 스티브잡스의 명언
스티브잡스가 남긴 명언가운데 우리에게 귀감이 될 몇 어록을 옮겨본다
늙은 사람은 앉아서 '이게 뭐야?'라고 묻는데, 소년은 '내가 이걸로 뭘 할 수 있지?'라고 묻는다.
자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매일 최후처럼 살면, 언젠가 당신은 가장 옳은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룬 것만큼, 이루지 못한 것도 자랑스럽습니다.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도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죽음이기 때문이다.